루브르 박물관 미술작품,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루브르 박물관 미술작품,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그의 프레스코(fresco) 작품을 만들 때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이것이 마르기 전에 물감으로 색을 입히는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프레스코 기술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형 작품에 주로 활용되었습니다. 프레스코는 일단 마르면 벽이 무너지지 않는 한 오랫동안 보전되지만, 그림을 수정하려면 회반죽을 다시 발라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미술작품

자유 학예 모임 앞의 젊은 남자

 

루브르 박물관 미술작품,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자유 학예 모임 앞의 젊은 남자

 

〈자유 학예 모임 앞의 젊은 남자〉는 로렌초와 조반나 델리 알비치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조반니 토르나부오니가 빌라 렘미(Villa Lemmi)에서 장식을 위해 주문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보티첼리는 일곱 가지 학문인 자유칠과(Seven Liberal Arts)를 의인화하여 그렸습니다.

화면 왼쪽의 젊은 남자는 로렌초 토르나부오니이고, 그를 이끌고 있는 여인은 ‘문법’을 상징합니다. 그 바로 뒤에서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여인은 ‘수사학’을, 전갈을 든 여인은 ‘논리학’을 의미합니다. 수학 공식을 기록한 종이를 왼손에 들고 있는 여인은 ‘산술’이고, ‘지혜’의 발치에 앉은 여인은 어깨에 삼각자를 걸치고 ‘기하학’을 상징합니다.

지혜가 들고 있는 올리브 나뭇가지는 일곱 가지 학문의 조화를 나타냅니다. 또한, 천구를 든 ‘천문학’과 탬버린과 작은 오르간 같은 악기를 든 여인은 각각 ‘음악’과 ‘천문학’을 상징합니다. 로렌초가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이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그가 지식인으로서의 폭넓은 지식을 자랑하고자 했음을 시사합니다.

 

세례 요한과 함께하는 성모자

 

세례 요한과 함께하는 성모자
세례 요한과 함께하는 성모자

 

보티첼리의 <세례 요한과 함께하는 성모자>를 감상하면, 십계명에서 왜 성상 숭배를 금지했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작품 속 아름다우고 우아하며 고혹적인 성모의 얼굴은 숭고한 신앙보다도 세속적인 아름다움에 먼저 눈길이 갈 수 있습니다. 그녀는 신성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예쁘다, 아름답다 등의 세속적인 기준으로 접근하기 쉽게 그려져 있습니다.

십계명에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중세 시대에 성상 숭배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예수, 마리아 등을 묘사하는 미술 작품은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설명하는 중요한 매개체였지만, 성상 숭배가 기독교 세계를 갈라놓는 분쟁을 초래했습니다.

중세에는 성경 속 인물을 ‘신성하고, 고귀하며, 근엄한’ 룰에 따라 그리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 결과, 성모자는 무표정하고, 때로는 무섭게 그려지며 천상의 빛을 상징하는 황금색 배경에 표현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대 그리스의 사실적이면서도 이상화된 미술의 경향이 부활했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비율과 볼륨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에서 신앙의 표현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며, 성모자의 표현에서 세속적인 아름다움과 신성한 경건함 사이의 괴리를 강조합니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는 15세기 이탈리아 문화와 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프로토-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Alessandro di Mariano di Vanni Filipepi(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디 반니 필리페티)이며, “보티첼리”는 그의 형제에게 붙여진 별칭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보티첼리는 1445년경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청년 시절에는 미술가 프로토게네스(Protogenes)에게 배웠습니다. 그 후, 피렌체의 명문 예술 학교인 메디치 교육원(Medici School)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보티첼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등과 함께 배움을 쌓았고, 그들과 더불어 피렌체의 예술적 지식과 영감을 공유했습니다.

보티첼리는 주로 종교적 주제의 작품과 피렌체 지역의 문화에 영감을 받은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특히,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과 <프리마베라>(Primavera) 같은 작품들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신화와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결합하여 특유의 우아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유명하며, 피렌체 미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보티첼리는 1510년경 피렌체에서 사망했으나, 그의 작품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재평가되고 선호되었으며, 그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